우리가 아이 그림을 들여다보아야 하는 이유

우리가 아이 그림을 들여다보아야 하는 이유

(이번 아티클은 리틀피카소 어드바이저 신동진 박사의 기고로 포스팅 되었습니다.)

영화 '기생충'에서 주인공 중 한 명인 기정이 부잣집에 미술 과외 선생으로 위장 취업을 하는데 이때 아이 그림을 분석하는 장면이 나온다. 기정이 아이가 그린 자화상을 보고 아이의 어머니인 연교에게 '스키조프레니아 존'이라고 하며 그림에서 아이의 정신과적인 징후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심리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미술을 전공하지도 않은 기정이 하는 이야기라 당연히 전문가적인 입장에서 봤을 때 그의 말들은 엉터리 그 자체이다. '스키조프레니아 존'이라는 것도 없을뿐더러 아이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그림만으로 아이의 심리 상태를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그 장면이 대중에게 '실제로 그림을 보고도 심리를 파악할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을 심어준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영화 상영 이후 '미술 심리 치료'를 다루는 블로그 글이나 기사들이 늘어난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미술을 통해 아이의 심리를 파악하고, 더 나아가 치료까지 할 수 있을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생각보다 인간의 원초적인 행동 중 하나이다. 글이 없었던 구석기 시대에도 인간은 그림을 통해서 의사소통을 하고 기록을 남겼으며, 처음에 발명된 문자들도 그림을 토대로 한 상형문자인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림이 원초적인 행동이라는 것은 굳이 인류의 먼 과거를 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손에 뭔가를 쥘 수 있을 때부터 그림을 그리려는 시도를 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원을 그리고, 세모를 그리고 주변의 사물들과 비슷한 것을 그리려고 한다. 그래서 아직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그림은 아주 좋은 표현의 수단이 된다. 이런 그림들은 어른인 우리가 다 파악하지는 못하지만 아이 나름대로의 생각과 의식, 심지어는 무의식까지 투영돼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그리는 그림을 통해 그들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고 심지어 치료까지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림을 통해서 아이의 심리를 파악하는 것은 단순히 아이를 관찰하고 이야기를 하는 것에 비해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적으로는 필요한 도구를 찾기가 굉장히 쉽다는 것이 있다. 그림은 언제 어디서든 그릴 수 있는 종이(종이가 아니더라도 괜찮다)와 그릴 수 있는 도구(펜, 물감, 파스텔, 컴퓨터 등)만 있으면 시행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미술이라는 상징적인 수단은 아이들에게 오히려 일종의 보호막이 있는 틀을 제공해 주는 것으로, 놀이나 운동 등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비현실적인 내면의 바람도 표현할 수 있으며 직접적인 대가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부정적인 충동이나 감정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정서적으로도 안정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단순히 완성된 그림을 해석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도중에 검사자나 보호자와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며 아이가 쉽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미술 검사나 미술 치료가 가지고 있는 맹점들도 분명히 있다. 40년 이상 미술 심리 치료에 전념한 미국 피츠버그 대학의 정신과 의사인 주디스 아론 루빈 교수조차도 '미술치료는 아직 꼭 맞는 이론을 찾지 못한 기법'이라고 이야기하며, 정신건강의학 분야를 한 일가에 비유하면 미술 치료는 아직 젖도 떼지 못한 어린아이에 불과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만큼 정신의학, 뇌과학, 심리학에서는 아직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마 그동안 정신과적인 치료에서 미술 기법의 연구가 더딘 이유는 아이들의 그림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이 부족하기도 했고 또한 그림의 표본을 모으고 분석하는 작업이 어려웠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최근에는 기술적으로 이러한 한계들이 극복되기 시작했으며 머신 러닝 등의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로 아이들의 그림도 객관적으로 방대한 양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기술의 발달이 앞으로 미술심리치료가 가지고 있는 단점들을 극복하고 아이들의 심리를 파악하고 치료하는데 더 많은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신동진 박사(서울대학병원 정신의학 전임의)

리틀피카소를 통해 아이 그림을 보관하고 아이 그림에 담긴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것은 어떤가요?